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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글뽀글 라면 반세기, 익산과의 인연은?

국내 도입 50주년 맞는 라면...라면의 명가 익산의 삼양식품 호남공장

등록일 2013년04월03일 18시45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라면과 익산은 ‘정(情)’으로 통한다.

라면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올해로 50년이다.

삼양식품 창업주인 전중윤 명예회장이 남대문 시장에서 ‘꿀꿀이 죽’과 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 서민들을 목격하고 식량난 해소를 위해 일본에서 라면을 들여오기로 결심, 일본 묘조식품을 설득해 라면기술을 전수받아 1963년 국내 최초 라면인 '삼양라면'을 출시했다.

어느새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나 이제 라면은 밥 다음 주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같은 라면 반세기 역사에서 따뜻한 인정으로 라면과의 특별한 인연을 맺은 곳이 바로 전북 익산시이다.

강원도 철원이 고향인 전중윤 삼양라면 명예회장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익산시에 삼양라면 공장을 세운 이유는 오로지 ‘정과 의리’ 때문이다.

전 명예회장은 6.25 전쟁 당시 예전 이리 지역에 피난왔을 때 끼니를 거르는 전 명예회장을 동네사람들이 보살펴줬던 것을 잊지 않고, 라면열풍이 불던 시절 1970년 익산에 삼양식품 호남공장(이하 익산공장)을 세워 지역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경제를 도왔다.

이와 함께 삼양식품 익산공장은 지역을 위한 나눔에 적극 앞장서며 지역기업으로 모범이 되고 있다. 익산공장은 행복나눔마켓에 정기적인 후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2011년에는 창립 50돌을 맞아 복지단체를 방문해 라면을 기증하는 등 꾸준히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현재 익산공장에는 200여명의 직원들이 라면과 스낵류를 생산하고 있으며 삼양식품 전체 생산량의 20~30%를 차지한다.

달인의 라면을 찾아라, 건방진 유통기한의 라춘쇠 라면

삼양라면을 생산하는 익산공장에는 30여년간 라면을 생산한 라면달인이 있다. 한때 달인의 라면을 찾기 위해 대한민국이 뜨거워진 적이 있다.

라춘쇠 라면은 2005년 9월 '건방진 유통기한'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끈 라면 포장지다. 이것은 한 네티즌이 ‘이상한 유통기한’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라면 포장지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사진 속 라면 포장지에는 ‘2005년 10.03까지다 라춘쇠’고 쓰여 있어 순식간에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았다. 알고 보니 ‘다’자는 제조공장인 익산공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놀라웠던 점은 라춘쇠라는 이름이 실제 제품을 생산하고 있던 직원의 이름이었고 식품생산자 실명제 도입으로 라춘쇠라는 직원의 이름이 라면 포장지에 인쇄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한때 라춘쇠 라면 모으기 열풍이 불기도 했다. 모 포털사이트 ‘네티즌 청원’ 코너에는 “30년 가까운 근속에 직급이 대리인 것은 너무하다”며 승진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라춘쇠 라면에 이어 2006년에는 라춘쇠 스낵이 인기몰이에 나섰다. 삼양라면 포장지에 인쇄돼 화제를 모았던 ‘라춘쇠’라는 이름이 라면에 이어 뽀빠이와 짱구에도 등장, 새로운 관심을 모은 것이다. ‘라춘쇠’씨가 라면 생산라인은 물론 뽀빠이 등 스낵류 생산라인을 관리해 그가 근무한 시간에 생산된 제품에는 모두 ‘라춘쇠’라고 찍혀 나왔다.

편의점 직원 등에 따르면 대부분의 소비자는 ‘라춘쇠’라는 이름이 찍혀 있는 제품을 큰 발견이나 한 듯 신기해하고 이 때문에 구매하기도 한다고 전한다.

라춘쇠 씨는 지난 79년에 삼양식품에 입사한 후 34년간 장기 근무를 하고 있다. 라면 생산라인 관리를 맡고 있기 때문에 포장지에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게 되며 소비자 관리 업무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공장 관계자는 전했다.

라춘쇠 씨는 우직하고 진지한 성격에 평소 농담은 거의 하지 않는 인물로 이름과 우직한 성격에 사내 별명이 ‘마당쇠’이다. 그는 동료나 후배들이 어려운 일에 처하면 도움을 주기 위해 스스로 나서곤 한다. 또 그 별명에서 느낄 수 있듯이 힘도 아주 세다는 점이 이채롭다.

요즘엔 승용차로 출퇴근하지만 1979년부터 2004년까지 오랜 세월동안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을 해온 억척 사나이 라춘쇠 대리는 휴일이며 낚시터에 들르는 소문난 낚시광이기도 하다.

라면과자 - 뽀빠이는 올해로 39살

뽀글뽀글한 라면과자 속 별사탕을 찾는 재미가 쏠쏠한 장수과자 뽀빠이는 올해로 39살이다.

라면을 토막내는 과정에 열을 더해 좀더 바삭하게 만들고 이를 유탕 처리해 만드는 뽀빠이는 익산이 고향이다. 익산공장 설립하던 해에 처음 라면과자로 탄생했으며 현재 익산공장에서만 생산된다.

1972년 기존의 라면과자에서 이름을 ‘뽀빠이’로 바꾸고 포장 디자인에 반영해 40년 가까이 판매되고 있는 장수제품이다. 현재 월 5만 박스의 매출을 올리며 꾸준하게 판매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는 성분강화와 패키지를 전면 리뉴얼해 ‘별뽀빠이’로 개명했다. 별뽀빠이는 어린이의 성장발육에 중요한 철분을 첨가하고 기존 식이섬유가 풍부한 귀리 파우더를 함유하는 등 어린이층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기능성 원료를 보강했다.

기존 검정색 톤을 4가지 색상의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바꿔 밝은 느낌을 반영했고, 패키지 전면에 뽀빠이와 뽀빠이의 여자친구인 올리브를 삽입했다.

<라면에 얽힌 에피소드>
라면? 실 아닌가요?

삼양라면이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였을 때 라면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라면을 옷감, 실, 플라스틱 등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라면을 끓이는 방법을 알리기 위해 회사의 전 직원과 가족들은 직접 가두판매를 실시하였는데, 극장과 공원 등에서의 무료 시식하는 홍보 전략이 1년 이상 이어졌다.

처음에는 전단지를 뿌리고 풍선도 띄워 라면 광고를 해보았지만 그것으로는 큰 효과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무료시식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품질의 우수성을 직접 확인토록 하는 홍보방법으로 라면에 대해 인식조차 없었던 소비자들에게 라면의 필요성을 확실하게 일깨워주었다. 실제로 행사 당시 “라면을 끓일 때 나는 향”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게 되었다.

한편 당시 중량이 100그램이었던 라면의 가격은 10원으로 서민층의 식생활을 대신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으로 가격을 책정했다고 한다. 남대문 시장에서 한 끼 식사로 사먹는 소위 꿀꿀이죽이 한 그릇에 5원, 커피값은 20원인 시절이었다.

라면은 값싼 가격에 맛과 영양을 만족시켜 서민들의 구휼식품 역할을 했고 쌀을 비롯한 주곡의 대체효과도 매우 컸다. ‘삼양라면’이 첫 선을 보인 1963년만에도 쌀 3,800여석의 대체효과를 그리고 1976년에는 145만 8,000여석, 1980년에는 184만 8,205석의 대체효과를 거두었다.

1963년부터 1980년까지의 판매실적에 한정시켜 계산한 쌀 대체총량은 1,482만 7,000여석이라는 엄청난 숫자로서 이는 1980년 환율 710대 1로 환산할 때, 14억 달러 이상의 외화절감효과를 거둔 셈이다.

라면은 왜 꼬불꼬불한가?

라면은 다른 국수가락과는 달리 꼬불꼬불한데, 그 이유는 첫째로 한정된 부피를 지닌 많은 양을 작은 포장지 안에서 처리하려는 공학적 계산을 했기 때문이다. 즉 직선보다 곡선상태가 많은 양을 함축한다는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둘째로 지방 등 영양가를 높이면서 유통과정에서 보존기간을 오래 지속하려면 튀김공정에서 빠른 시간에 많은 기름을 흡수하여 튀겨지도록 수분 증발을 도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이는 직선보다는 곡선형이 좋다.

셋째로 상품가치로 보더라도 직선보다는 꼬불꼬불한 곡선형이 시각과 미각에 어울리는 미학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 이유로 라면의 면이 다른 국수가락과는 달리 꼬불꼬불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통뉴스 정명열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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