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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都 익산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찾아서~’

아리랑 고개~미륵산성~익산토성 이어진 문화 유적지 탐방

등록일 2015년05월04일 11시51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박경철 익산시장을 비롯한 익산시 공무원 40여명은 지난 2일 미륵산성과 익산토성 등 이천년 역사고도를 상징하는 주요 문화유적지 탐방에 나섰다.

이날 탐방은 이천년 역사고도 녹색도시를 지향하는 익산의 본질적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마련됐다.

아리랑 고개에서 미륵산성, 익산토성으로 이어진 문화 유적지 탐방은 특히 박경철 익산시장이 직접 앞장 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문화 유적지탐방이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는지 살펴봤다.

이천년 역사고도 익산의 심장 ‘미륵산성’
아리랑 고개, 일명 다듬재에서 올라간 미륵산성. 미륵산성은 미륵산 정상부와 골짜기를 감싸는 포곡식 석성으로 일명 기준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미륵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와 같이 아리랑 고개에서 올라가는 코스는 미륵산성을 측면에서 감싸 오르며 내려오는 구조이기에 미륵산성의 참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코스라 한다. 또한 미륵산성과 미륵산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절경은 보너스.

앞서 소개한데로 미륵산성은 고조선의 준왕이 한반도로 남래 해 이곳에 산성을 쌓았다고 하여 기준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 탐방을 주도하며 앞장 선 박경철 시장은 “‘기준성’의 ‘기(箕)’자는 ‘기자조선’의 ‘기(箕)’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의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또한 미륵산성에 대한 안내판을 보는 관광객들이 자칫 ‘기준성’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안내글을 곧이곧대로 믿어 익산에 대한 왜곡 된 역사가 전달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4개의 나라가 도읍으로 삼은 곳 익산
그렇게 미륵산성의 탐방을 마치고 미륵산 정상을 지나 도착한 곳은 익산토성. 역시 익산시 금마면에 자리하고 있는 익산토성은 백제말기에는 토성으로 지어졌다가 통일신라시기에 석축성으로 개축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익산토성은 오금산성, 또는 보덕성으로도 불리는데, 과거 고구려 왕족 안승이 이곳에 보덕국을 세웠다고 하여 이와 같이 이름이 붙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며 보덕성의 흔적은 많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보덕성의 역사· 문화적 가치는 비단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익산은 과거 고조선, 마한, 백제 그리고 보덕국의 수도로서, 이는 반 만년이 넘는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 유일무이한 익산의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으로, 익산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역사·문화적 우월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지방자치, 지방정부라는 말이 흔해지고 사회가 세분화된 지금 현재. 지방자치단체 역시 지방자치단체만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 중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익산시가 추진한 문화유적지 탐방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

이번 익산시가 추진한 문화유적지 탐방이 단순한 탐방으로 그치지 않고 익산시가 가진 고유한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비상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소통뉴스 정명열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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