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에서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A씨(42)는 매년 이맘 때면 다가오는 연말이 두렵기만 하다. 모두가 들뜬 연말이지만, 그에게 12월은 자본금 평균 잔액을 맞춰야 하는 부담 탓에 하루하루 잠자리가 편치 않다. 그는 현 상황을 "불황에다 예치기간까지 늘어나 죽을 맛"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익산 건설업체들이 연말 자본금(재무재표상의 평균잔액)을 맞추느라 이른바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25일 익산시와 대한건설협회 전북도회에 따르면 건설업체는 매년 12월 건설산업기본법의 등록기준에 정해진 실질자본금의 평균잔액을 법인 통장에 예치한 후 기업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건설업 관리지침에 따라 연말까지 면허 종류별로 지정된 자금을 통장에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 법에 따르면, 일반건설업의 경우 건축공사업 6억원, 토목공사업 7억원, 조경업 7억원, 토·건 12억원, 산업설비 12억원 이상이며, 전문건설은 포장·강구조물 3억원, 철콘 2억원, 토공 2억원, 상·하수도 2억원 등이다.
특히, 12월 말일 하루잔액(일명 말잔)만 맞추면 그만이던 자본금 예치기간을 정부가 2년전부터 "재무제표 왜곡 현상을 막는다"는 이유로 말잔이 아닌 30일간으로 예치기간을 늘리더니, 급기야 올 11월부터는 개정된 관리지침에 따라 예치기간을 60일 이상으로 크게 늘렸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일거리가 없어 위기에 몰려있는 지역 건설업체들이 연말까지 수억원에 이르는 자본금을 맞추기 위해 비상에 걸렸다.
이 지침을 지키지 못할 경우 영업정지나 최악의 경우 등록말소 등 행정처분을 받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각 금융기관은 예금담보 대출이나 대표이사 개인 명의로 대출한 뒤 법인통장에 입금시키는 편법에 대한 감독과 내부 감사를 강화하면서 시중은행에 손을 벌리기가 어려워진 점도 악재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담당 직원들이 몸을 사린 탓에 중소건설사, 특히 자본력이나 실적이 부족한 업체들이 대출을 받으려면 그에 상응한 담보가 있어야 한다”고 현재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건설업체들은 수억원에 이르는 자본금을 구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고금리의 사채시장에까지 손을 내밀고 있는 형편이다.
토·건 면허를 갖고 있는 B업체는 자본금 12억원을 맞춰야 하나 최근 금융위기 상황에서 은행권에서는 일찌감치 건설업에 대한 대출을 중단, 수도권 사채시장 쪽에서 융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업체 사장은 “부실기업 퇴출도 좋지만 가뜩이나 공사물량도 없었던 상황에서 평잔 맞추기는 영세한 지역업체들로선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며 “은행들마저 대출을 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한꺼번에 수억원의 돈을 60일 이상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사채시장으로 가라는 말과 같다”며 애로를 토로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난립하는 건설업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역의 한 중견업체 대표는 “건설업계가 공멸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실한 업체에 대한 정리는 어떤 식으로든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보였다.
도 건설협회 황 훈 담당자는 “이번 조치는 국토해양부가 자본금과 관련한 건설업 관리지침을 개정하면서 일부 부실 건설업체의 자본금의 가장납입, 일시 자금조달 등 편법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협회는 정부의 관리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고, 법이 강화돼 정부의 실사도 예상되는 만큼, 불이익이 없도록 규정을 이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현재 익산에는 일반건설 55개, 전문건설 536개의 건설사가 각각 영업을 하고 있다.